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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라다무 원고 버리는 글

다이무스 홀든은 유능한 인재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는 사랑받는 법이다.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윌라드 크루그먼은 커피 한 잔을 들며 보고서를 펼쳤다. 보고서는 다이무스 홀든이란 남자가 얼마나 유능한 인재인지 서술하고 있었다. 무수한 능력자가 소속되어있는 헬리오스에서 에이스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낸 무력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재계에서 보이는 탁월한 판단력은 정부 측에서도 주목하는 바 있었다. 다소 고지식하다는 평이 있기는 했으나 그 정도야 흠도 아니다. 이십 구년을 이정도로 오점 없이 살기는 어려운 일이다. 아마 태어났을 때부터 정해진 레일 위를 끌려가는 줄도 모르고 뛰어왔을 것이다.


윌라드는 타인의 스물아홉 해 인생이 요약된 보고서를 소설책 읽듯 넘겼다. 아무렇게나 넘겨지는 종이 끝이 닳고 휘어진다. 이미 몇 번이고 거듭해서 읽은 탓에 집중하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다음 내용이 줄줄 이어졌다. 새로운 내용을 확인하려는 목적이 아니니 넘기는 것은 쉬웠다.


커피 한 잔을 다 마시기도 전에 마지막 장이 넘겨진다. 윌라드는 다 읽은 보고서를 반으로 반듯하게 접고, 엄지와 검지로 구부러진 부분을 꾹꾹 눌렀다. 그런 다음 끝을 손에 쥐고 전기를 튀어올린다. 전류가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빳빳한 흰 종이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손바닥과 책상 위에 쌓인다. 활자를 알아보기는커녕 원래 무엇인지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탔다. 윌라드는 손에 남은 재를 그대로 털어낸 다음 커피잔을 마저 기울였다. 오늘따라 향이 좋다.


잔을 다 비워냈을 지음에 무거운 노크 소리가 딱 두 번 들렸다. 바로 뒤이어 다이무스 홀든입니다. 호출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공손한 투를 취하고는 있지만 특유의 고압적인 어조는 여전하다. 대놓고 지적한 사람이 없으니 본인이 무슨 어조로 말하는지 모를 것이다. 윌라드 또한 굳이 꼬투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다. 일개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 고압적이지 않다면 그건 또 우스운 일이다.


들어 오십시오.”


기름칠한 경첩은 조금의 소음도 내지 않는다. 문이 열리고, 흰 머리통이 방 안쪽으로 들이밀고 온다. 능력을 시사하는 홀든가 특유의 선연한 백발이다. 각이 선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굳어 있었다. 다만 개인 임무를 내릴 것이 있어 호출했다고 판단했는지 전투복 차림에 기세도 평소보다 날카롭다. 행정을 전담하는 사무 직원들이라면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마침 개인 비서가 급한 용무가 있어서, 커피라도 한 잔 하시겠습니까?”

아니오, 괜찮습니다.”


소파에 앉힌 채 커피 머신 쪽으로 걸음을 옮기자 마뜩찮다는 목소리가 거절을 표한다. 상사가 커피를 타게 할 수 없다는 것보단 커피를 마실 정도로 시간을 오래 끌고 싶지 않다는 것에 가까웠다. 제 딴에는 숨긴다고 숨겼지만, 그래봤자 서른 해도 살아보지 못한 애송이다. 후계자 교육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았지만 양 뺨에 몰락과 퇴색의 입맞춤을 받고 있는 검가에서 한다면 얼마나 하겠는가. 윌라드는 홀든 가에서 다이무스 홀든에게 걸었던 기대를 어느 정도 그려낼 수 있었다. 아마 다이무스는 그들의 기대에 꼭 맞게 자랐을 것이다.


여전히 우수하다고 평이 자자하더군요.”

과찬입니다.”


윌라드는 다이무스를 등지고 서서 커피가 내려지기를 기다렸다. 익히 들었는지 다이무스의 목소리에는 별 감흥이 없다. 특별한 반응을 기대하고 던진 말이 아니었기에 윌라드도 그러려니 했다




윌라다무 원고하다 갈아엎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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