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저택은 유난히 고요했다. 지금으로부터 십 수 년 전에 비해 이렇다 할 달라진 구석은 없건마는 지독히도 낯설었다. 마치 이곳이 결코 과거의 그곳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몸이 먼저 깨닫고 있다는 듯이.
이글은 복도 끄트머리에서 불빛이 아른거리자 어둠 속에 더욱 깊이 몸을 숨기었다. 이윽고 홀든가 검사 두 명이 낮은 발소리와 함께 스쳐지나갔다. 혹시 모를 침입자를 막기 위한 야간 순찰조는 이글의 존재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멀어졌다.
창가 가까이에 몸을 붙이고 있던 탓에 장미향이 아득하다. 크리스티네 프리트가 가문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이무스 홀든과 결혼한 뒤로 혼든 가 정원에는 항시 장미가 만발했다. 온실 정원에는 사계절 내내 장미가 피었다. 끔찍하기 짝이 없다. 이글은 조금 신경질 적인 표정으로, 그러나 발자국 소리는 완전히 죽인 채 창가의 어둠에서 다른 어둠으로 옮아갔다. 그 와중에 이글은 장미 정원을 지워버리는 생각을 했다. 한 아름 피어 너울거리는 장미를 뿌리째 뽑아 한데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것이다. 제법 현실성 있는 상상인 것 같았다.
이글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걸으며 한 손으로 품안에 든 칼자루를 매만졌다. 반평생 넘게 쥐어온 애도와는 확연히 다른 감촉이다. 질감이며 뭉뚱그려진 모양새며 굵기 할 것 없이 죄다 낯선 것이다. 이번 일을 위해 급하게 준비한 것이라 미처 손에 익을 새가 없었다.
‘별 짓을 다 하는군.’
이글은 속으로 자조하며 홀든가 안주인의 침실로 조용히 들어갔다. 누가 보았다면 남편이 들어가는 줄 알 정도로 자연스럽고 망설임 없는 움직임이었다. 정말 우스운 꼴이다. 가슴은 놀랄 정도로 차분했다. 그만큼 이글은 지금 하려는 것이 미친 짓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정말 어쩔 수가 없었다. 광증이 혈관을 뛰놀고 뇌의 신경을 끊는다. 저항은 해일을 양팔 벌려 가로막는 것만큼이나 부질없었다. 완전히 미쳐버린 것이다. 광증의 이름은 사랑이었다.
이글은 천천히 침대가로 발을 옮기며 칼을 빼들었다. 커튼이 걷힌 창 너머의 달빛이 칼날에 부딪혀 반짝였다. 눈을 찌를 것처럼 희다. 흰 빛 속에서 이글은 아른아른 거리는 사내의 형상을 건져 올렸다. 열 몇 살부터 정을 품었던 사내의 얼굴이란 이다지도 뚜렷하다. 격정에 흐려진 눈동자가 탄식한다. 이글, 사랑을 하자. 열 하룻밤이 넘도록 얼굴을 못 보아도 한 밤을 넘기고 새벽녘에나 꼬박 헤어진 연인처럼 서로를 잃지 말자. 우리는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이글은 몸을 가볍게 떨었다. 전율이 몸을 타고 올라왔다. 이 병마가 몸을 죽인다 해도 이글은 기쁘게 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 멀지 않은 일 같았다.
크리스티네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었다. 세상모르고 고아한 얼굴은 제 남편이 그녀를 두고 혈육과 한 침대를 데우는 것도, 그러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기에 수심이 없다. 이글은 잠시 숨을 죽이고 크리스티네를 내려다보았다. 가는 목은 움켜쥐고 동맥을 누르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이글은 비로소 그녀에게서 사랑과 아주 유사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처럼 이 여자가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다음 순간 발자국 소리가 나지막히 들렸다. 이글은 깜짝 놀랐다. 쥐고 있던 칼을 다시 집어넣고, 황급히 숨을 곳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마침 꼭 닫히지 않은 옷장이 눈에 들어와 그 안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이쪽으로 올 사람은 다이무스뿐이다. 심장이 곧 죽을 것처럼 세차게 뛰었다.
침실로 들어온 사람은 아니나 다를까 다이무스였다. 그는 얇은 가운 차림이었다. 너른 어깨와 탄탄한 가슴이 눈에 들어왔다. 다이무스는 침대가로 다가가 몸을 숙이고 크리스티네의 이마와 눈꺼풀과 뺨에 입을 맞췄다. 애들이나 볼 법한 동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머리가 어지러워 그밖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느리게 일어나 앉은 크리스티네가 눈을 끔벅인다.
뒷내용은 미성년자 관람불가 일 것 같음<
희망 마감일은 내일 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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