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만에 돌아온 본가는 여전히 고풍스러웠다. 아, 고풍스럽다 뿐인가. 발걸음마다 숨이 턱턱 막히고, 당장이라도 등을 돌려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이 인다. 본가에 대한 이미지라곤 썩어 문드러지는 것밖에 없다. 그야 좋은 한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걸 떠올리며 위안 삼는다는 것은 손가락을 생으로 꺾는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다. 열 손가락을 죄다 꺾어 부러진 손가락으로 바닥을 기어서라도 과거를 없는 일로 할 수 있다면 차라리 좋았을 것이다. 물론 불가능했다. 불가능하기에 희망하는 것이다. 이글은 지금까지도 종종 본가에서 있었던 일들을 꿈으로 떠올리곤 했다.
응접실로 안내하는 메이드는 아주 공손한 태도였다. 눈을 결코 마주치지 않고, 목소리도 사근사근하다. 잘 교육시킨 태가 났다. 못 보던 얼굴이었다. 아마 집을 떠나고 나서 새로 고용된 모양이다. 집안의 고용인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얼굴이 낯익지 않고 태도가 경멸하는 티가 묻어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 것이다. 집을 떠나기 전에 고용되었다면 홀든가 삼남이 오메가인 것을 알고 있을 것이고, 그럼 태도야 순종적이더라도 경멸하는 눈짓까지 숨기지 못했을 테니까.
최근 들어서야 인권 신장이니 뭐니 해도 오메가 취급이야 거기서 거기였다. 알파 전용 섹스 토이, 씨받이…. 뭐 그렇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아마 고귀한 피에 오메가의 것이 섞였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겠지만, 저가 오메가라는 것을 꽁꽁 숨긴 것만큼은 감사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하 연합에 들어가는 건 먼 이야기였을 거다. 그걸 생각하면 큰 형이 오메가와 결혼한다는 것도 좀 우습기는 했다. 이글은 얼마 전 지하 연합 쪽으로 도착한 다이무스 홀든의 결혼 청첩장을 떠올리고는 응접실 의자에 기대어 마른 웃음을 흘렸다. 금박이 입혀진 유려한 필체로 적힌 것은 다이무스 홀든의 이름자뿐이다. 그건 상대가 오메가라는 뜻이다. 오메가의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회적인 취급이 딱 그랬다. 심지어 멀쩡히 존재하는 인간을 행정 기록에서 말소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오히려 다이무스가, 오메가를 본처로 맞아들인다는 게 더 놀라왔다. 알파를 낳아도 후처면 모를까 본처는 어려울 텐데.
“오랜만이구나, 이글.”
“그러게, 오랜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