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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ss

[마틴이글] 단문

 

요 사이 이글은 섹스 후 부쩍 아편을 피웠다. 매번 뭘 피워대는지 알아차리는 데에는 굳이 머리를 읽을 필요도 없었다. 그랑 플람 재단은 무역 업체 몇몇을 후원하고 있었고, 지금 이글이 피우고 있는 것도 그랑 플람 재단이 후원하고 있는 측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해당 업무 총책임자인 마틴은 당연히 알았다. 지금 뿐만이 아니다. 평소 물처럼 마시던 술에도 타서 마시고 있는 것 같다. 마틴은 지하 연합 소속의 누군가가 요즘 이글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신다고 걱정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저러다간 공성에서 능력을 발휘하는데 지장이 오는 것은 아닐지 염려하고 있었다. 아주 우스운 일이다.

 

요즘 그거 피우는 일이 잦네요.”

넌 꼭 알면서 이야기를 해야겠냐.”

세상에는 입에 올려야 의미가 있는 말도 있잖아요?”

 

나도 알고 있으니까 닥쳐. 평소 내뱉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험한 말투가 머릿속으로 쏘아붙였다. 마인드 리딩이 전등불 마냥 온오프 할 수 있는 편한 능력이 아니라, 마틴은 그걸 고스란히 들었다. 어차피 이글은 겉과 속이 크게 차이나는 인간도 아니다. 입에 올리건 생각을 하건 그게 그거다. 처음에는 경계를 하더니 이렇게 사귀는 것 비슷하게 된 뒤론 때때로 말하는 것도 번거롭다며 생각으로 의사 표현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마인드 리더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 인간은 이글이 처음이었다. 직접 말하지는 않아도 다들 껄끄러워 했다. 유감스러운 건 그것마저 마틴에게는 들렸다는 점이지만.

 

마틴은 침대에 누워, 아편을 피우는 이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등 뒤로 쏟아진 여자처럼 긴 머리카락, 그럼에도 도저히 여자로 볼 수 없게 하는 굵은 어깨와 팔뚝선, 조금 구부러진 등, 도드라진 어깨뼈와 척추, 허리선 아래에서 올라갈수록 드문해지는 정사의 흔적, 곳곳에 남은 전투의 상흔, 흰 몸을 감싼 부연 연기. 곧 죽을 사람처럼 희미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다르게 이글은 비능력자였다. 고된 훈련과 타고난 신체적 우월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일반인치고는 우수할 뿐 능력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런 그가 능력자들의 공방에서 버티고 싸울 수 있던 것은 순전히 약물에 의존한 덕이었다. 신체의 능력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약을 복용하는 것이다. 당연히 그만큼 부작용도 만만찮았다. 한계치 이상의 일을 수행한 신체는 안쪽에서부터 무너졌다. 무서운 고통과 함께 몸은 착실하게 죽어갔다. 이글은 그걸 오 년 넘게 복용해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면 매순간 엄습하는 아픔만으로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쳐 죽었을 것을 이때까지 버텨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한계다.

 

삼 개월이라, 애매한 시간이네요.”

안 그래도 고민중이야. 누구한테 죽어줘야할지. 역시 형한테 죽어줘야 하나?”

울 걸요, 그 사람.”

, 그거 볼 만 하겠는데. 죽는 게 아쉬울 정도로.”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글은 머릿 속에서 다이무스의 손에 죽는다는 선택지를 지웠다.

 

죽는다면 내가 죽이고 싶은데요.”

네가? 목이라도 조르게?”

 

가당찮다는 듯 웃음을 토하던 이글이 생각을 바꿨는지 고민에 잠겼다. 지금 몸 상태면 몸 쓰는 일과는 무관한 마틴이 목을 졸라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랑플람 재단과 연합 사이에 분쟁의 빌미를 남기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 정도는 알아서 막을 수 있겠지. 생각할수록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날짜는 언제가 좋아?”

저기요? 우리 아직 사귀는 중입니다만? 방금 전에 섹스도 했어요? 적어도 배신감 비슷한 건 느껴야하는 거 아닙니까?

뭐 어때. 먼저 말 꺼낸 건 너잖아?”

 

이글이 마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할 때 다르지 않게 평이한 어조로 물었다. 3개월, 아니 가능한 오래 살아봐야 3개월 남짓이란 말을 들었을 때도 이랬을 거다. 어차피 넌 내가 죽어도 잘 살 거잖아. 마틴을 내려다보면서 이글이 그런 생각을 툭 던졌다. 비틀어 올린 입술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얼굴을 가린다. 웃음기 띈 입매와 다르게 눈동자는 유리조각 같다. 그렇잖아도 색소 적은 몸이 날이 갈수록 희게 뭉개졌다.

 

이글이 죽어도 마틴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 살 것이다. 이글은 그래서 마틴과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어차피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삶이다. 자기가 죽어도 멀쩡할 사람이 필요했다. 내 죽음에 슬퍼하지 않을 사람, 금방 잊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면 무서웠다.

 

저도 그렇지만, 당신은 참 나쁜 사람이예요.”

 

마틴은 그렇게 말했다. 마틴이 이글에게 처음 접근한 건 이글이 비능력자인 걸 안 이후다. 그때는 순전히 이용하기 위해서 접근했다. 이걸 잘만 가다듬으면 연합과 회사에 동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게다가 비능력자임에도 능력자들과 검을 견주는 것에도 흥미가 갔다. 실제로 최면을 통해 비능력자 몇 명에게 같은 약물을 복용시키기도 했다. 하나같이 제대로 이용하기도 전에 폭주하고 신체가 붕괴해서 죽어버리기는 했지만. 비능력자를 이용한 일회용 무력 집단 설립은 무기한 보류했지만, 이글 홀든이란 인물에게는 더욱 흥미가 갔다. 만약 그때 이글에게 접근하는 걸 그만 두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 잘 됐네. 지옥에서 보자구.”

 

이글이 마틴의 얼굴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연기를 훅 불었다. 불의의 습격에 마틴이 쿨럭거리자, 이글이 킥킥대고 웃었다. 그러고는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넌 가끔 동갑이라는 게 안 믿길 정도로 귀엽단 말이야. 했다. 마틴은 그러는 당신은 동갑이라는 게 안 믿길 정도로 유치하구요. 라고 받아쳤다. 마인드 리딩의 맹점이다. 생각하지 않고 행하는 행동에는 다른 사람보다 대처가 느렸다. 초반에는 그것 때문에 한참 곤욕을 치뤘다. 어떻게 행동이 생각을 거치지 않고 이뤄질 수 있느냐고 물어보자, 오히려 그런 걸 생각까지 하고 하냐는 반문이 돌아왔다. 너무 이글다운 답변이라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람 얼굴에 대고 연기 뿜는 거 그쪽이랑 자고 싶다는 뜻이라던데,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나요?”

, 아니.”

 

넌 아까도 그렇게 박아놓고 더 하고 싶냐. 이글이 질린 기색으로 몸을 슬쩍 뒤로 뺐다. 그렇지만 이럴 때만 이글보다 빠른 마틴이 이글의 팔을 잡아챘다. 이글이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섹스가 살 빠지는데 도움이 된다던데 제 다이어트에 협력할 생각 없어요? 죽어서는 서로 지긋지긋한 얼굴 그만 보게 착한 일 좀 해요

너 이거 저녁에 돼지같이 먹는다고 놀려서 이러는 거지.”

왜 아니겠어요.”

 

마틴이 눈을 접어가며 웃었다. 그는 정말 이글이 마인드 리더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 * *

 

이글은 그로부터 10일 후에 실종되었다. 편지 한 장 남기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 중 그가 사라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깨끗하게 정리된 그의 숙소만이 그가 납치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연합 소속 능력자를 비롯한 몇 명이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했고, 수 개월 뒤 시체없는 장례식이 작게 열렸다. 평소 이글과 친하게 지내던 그랑 플람 재단 소속의 마틴 챌피도 그 자리에 참석했으나, 눈물 한 방울 보이지 않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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