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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ss

[다이글] 반목 1


단단하게 묶인 손목이 뻑적지근했다. 관절이란 관절은 죄다 삐걱거리고, 근육 신경은 모조리 죽은 것 같다. 능력 억제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을 투여하고도 모자라 악취미적인 구속복까지. 예상은 했지만 정작 당하고 나니 기분이 더럽다. 이글은 팔에 힘을 실었다가, 미동도 않는다는 걸 알고 힘을 풀었다. 개같은 회사 새끼들. 죽이려면 그냥 죽이지. 어차피 회사가 궁금해하는 정보는 이글의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 지하 연합은 점 조직의 형태를 띄고 있어 같은 소속이라도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고, 더욱이 이글처럼 1선에 서는 사이퍼들에게는 오히려 정보의 통제와 조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글은 십 대 무렵 가문을 나와 지하 연합에 투신했다. 입에 올린 이유는 회사를 돕는 것보단 지하 연합을 돕는 게 더 재미있어 보일 것 같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성향이 그랬다. 일가가 헬리오스 소속이니 아무래도 어린 시절부터 자주 접한 것이 있어 더욱 분명하게 알았다. 헬리오스와는 아무래도 맞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집안을 나와야 겠다고 생각했고, 결정적인 이유가 생기자 미련없이 나왔다. 그게 벌써 수 년 전이다. 회사 소속 사이퍼를 죽이고, 죽임당할 뻔한 일은 양 손으로 꼽아 헤아리기도 어려웠다. 당연히 어느 전장에서 죽거나, 혹은 지금처럼 회사 소속 사이퍼에게 사로잡히는 미래는 연합에 들어올 때부터 그리고 있었다. 가능하면 전자이길 바라기는 했지만 말이다.

 

눈을 가리고 재갈을 물리기는 했지만 귀까지 막은 건 아니라 문이 열리고 발소리 여럿이 가까워진다는 건 들었다. 그리고 옴짝달싹 못하게 구속해서 세워둔 몸이 뒤로 살짝 기운다 싶더니, 그대로 실려갔다. 바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수레나, 뭐 그와 비슷한 것인 듯 싶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거라던가, 하는 상투적인 말은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날카로운 시선만 쿡쿡 찔렀다. 이글은 굳이 그게 누구의 것일지 추론하지 않았다. 순전히 대상을 구체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짐작 가는 상대가 많았기 때문이다. 헬리오스와 지하 연합 사이의 골은 오래된 것이다. 신념 차이로 시작했으나 종막은 이권 다툼이었다. 모래알만큼 많은 사이퍼들이 양 진영에 스카우트되어 서로 싸우고, 죽어나갔다. 진부한 이야기다. 다만 이글은 곧 죽겠군. 곱게 죽여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별 감흥없이 생각했다.

 

어디쯤엔가 덜컥 멈춰섰다. 발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고문실인가? 하지만 촉각으로 느껴지는 공기의 흐름으로 미루어 고려할 때 고문실이라고 하기엔 좀 넓고, 환기도 꾸준히 하는 듯 싶었다. 미리 알고 있던 정보와는 좀 다르다.

 

승인은 했지만 난 여전히 반대야. 당신이 저걸 제대로 통제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사감이 지나치군, 조노비치.”

사감? 내가? 공적인 일에 사감을 밀어붙이는 건 당신 쪽이겠지. 집 나간 동생도 동생이라고 죽이지는 못하겠나봐?”

 

그간 죽어간 헬리오스의 인재들이 얼만데. 죽은 당신 부하들이나 몽블랑 가의 아가씨가 알면 울 걸. 특히 그 아가씨는, 당신을 꽤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어? 어떻게 하기 전에 당신 동생이 죽여버렸지만 말이야. 신경질적인 목소리다. 이글은 금방 그 목소리의 주인을 떠올렸다. 불의 마녀 타라 조노비치. 전장에서 만난 적이 있는 만큼 인식하는 건 빨랐다. 역시 그때 목을 땄어야 했는데. 반추하자 자연히 그런 후회가 스몄다. 여러모로 능력있는 여자다. 겁없이 전장에 발을 디뎠을 때 제대로 죽였어야 했다. 팔 한 짝을 베고 나선 좀처럼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당신이 오른팔에 의수를 달게 된 원인이기도 하지. 하지만 우선권은 이글을 생포한 내게 주어졌고, 나는 죽이기보다 회사로 끌어들이는 쪽이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이사진들은 내 의견을 받아들였고 말이야. 당신이 이 자리에 있는 건 당신 의견을 묻기 위해서가 아니라 참관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걸 상기해줬으면 좋겠군.”

그래, 내가 내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건 인정할게. 하지만 이건 염두에 둬. 이번이 마지막이야. 두 번은 없을 거야.”

실수는 한 번으로 족하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다.”

 

어떻게 상황이 돌아가는 중인지 윤곽이 잡혔다. 그다지 상정하고 싶지 않았던 가정이었다. 동시에 가슴을 가로지른 상처가 욱신거렸다. 사로잡히기 직전 다이무스에게 입은 상처다. 이글은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던 직전에 다이무스로부터 불의의 습격에 처했다. 제대로 대항하기에는 당시 몸 상태가 너무 나빴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태도가 가슴을 깊게 갈랐다. 갈비뼈 몇 개도 함께 나갔다. 조금만 더 깊게 그었다면 심장이 쪼개졌을 것이다. 덕분에 허무할 만큼 속절없이 무너졌고, 그대로 신병이 구속되었다. 치료는 딱 죽지 않을 만큼만 받았다. 당연히 진통제고 뭐고 없다. 근육 신경은 마비되어도 통각 신경은 멀쩡히 작동하는지 고스란히 아팠다.

 

다이무스에 의해 억지로 끌려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혀라도 깨물 것이다. 그만큼 이글은 다이무스를 혐오하고 있었다. 다이무스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갈색 눈동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치밀었다.

 

대화가 끝났다면 이만 시작해도 될까요?”

못 볼 꼴을 보였군.”

그다지요.”

 

마인드 리더. 청각을 사로잡은 또 하나의 목소리에 이글은 놀랐다. 방금 것은 그랑 플람 재단 소속 사이퍼인 마틴 챌피의 목소리다. 그랑 플람 재단이 회사 측에 병합된다는 소문이 있긴 했지만 이런 자리까지 올 줄은 몰랐는데. 이건 상당히 곤란한 소식이다. 그는 상당히 강력한 정신계 능력을 가지고 있다. 마음만 먹는다면 지하 연합의 중추에 접근하는 것도 시간 문제다.

 

연합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눈 가리개가 벗겨졌다. 장시간 빛을 보지 못했던 까닭에 동공이 급작스럽게 수축한다. 눈물이 나오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시렸다. 시야가 그저 하얗다가, 천천히 형태를 잡는다. 금색, 회색, 적색, 백색 따위로 뭉뚱그려진 것들이 점차 또렷해진다. 한 손에는 안대를 쥔 채 천진하게 웃고 있는 마인드 리더와, 창문 없는 회색 방, 스카프를 매고 긴 소매에 장갑을 낀 불의 마녀,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다이무스. 좆같은 상황이다. 특히 갈색 눈동자를 마주하자 신물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싫어할 만한 이유가, 아하. 어쩐지 그런 답지 않은 거래를 제안해 온다 싶었는데, 그런 거였군요.”

 

타라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다이무스와 이글에게는 충분히 들릴 만큼 작은 소리로 마틴이 중얼거렸다. 닥쳐, 씨발. 정신계 능력자는 이래서 싫다. 너무 싫어하진 말아요. 저는 그쪽을 상당히 마음에 드는 걸요. 이렇게 좋은 기회도 제공해주고. 쓸데없는 말 하지 말라는 듯 뒤편에서 일침을 가하자 마틴은 어깨를 으쓱 떨면서 웃었다. 그럼 일을 해야겠네요. 하기 전에 미리 알려주는 게 좋을까요?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전 지금부터 당신에게 정신 조작을 걸 거예요. 다이무스 씨의 말대로 철저하게 움직이도록. 쉽게 비유하자면 당신이 로봇이고, 리모컨을 다이무스 씨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생각이나 말하는 것 정도는 자기 뜻대로 할 수 있을 거예요. 그게 더 어렵기는 하지만, 그걸 원한다는데 어쩌겠어요? 잘 자요. 다시 눈을 뜰 때는 많은 게 달라져 있을 거예요. 그 말을 끝으로, 의식이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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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사퍼만 하는 바람에) 오늘 올릴 게 펑크가 나서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 타임오버..,

시간상 뒷내용은 언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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