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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쿠라가 인어를 구입하게 된 것은 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1월 초의 일이다. 성년이 된 기념으로, 이전부터 고대하고 있던 클럽에 가담하게 되었던 까닭이다. 미성년이라는 태그마저 떼어버린 아들의 방종이 자신들의 사회적 말살을 불러일으킬까 두려워했던 까닭이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는 고교 동창이자 지인인 K로부터 클럽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쭉 그와 관련한 기대를 품고 있었고, 그 기대가 실현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뺨을 쓰다듬는 열기는 어째서인지 미지근했다. 바쿠라는 스포트라이트를 한껏 받은 무대에서 시선을 돌렸다. 얼굴 위로 어둠이 내린 참관객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뭉뚱그려져 있었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힘들만큼 서로가 서로를 닮아 있었다. 바쿠라는 그 얼굴을 턱 아래에서부터 가르는 상상을 하다가,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입맛을 다셨다. 그야 분명히 즐거운 일이겠지만, 소리 소문 없이 도쿄항 앞바다에 가라앉는 일은 사양하고 싶었던 까닭이다. 아직은 이 세상에 즐길만한 거리가 충분히 남아있었다. 지금만 해도 기대의 결과를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여기서 섹스돌을 샀다던데 그건 잘 지내고 있어?”
앞에서 사회자가 실컷 떠들어 댄다. 바쿠라는 K에게 관심을 돌렸다. 섹스돌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통상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다. 단백질 인형처럼 숨쉬고, 주입된 알고리즘에 따라 행동하고, 사람과 몹시 유사했다. 수명이 짧지만 않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1년, 길어야 3년가량이라던가. 쓰고 버리기 좋은 기간이다.
“이전부터 생각했지만, 네 부모는 네게 지나치게 물러.”
K가 단정짓듯 비난했다. 그는 바쿠라 쪽으로 흘끗 시선을 던지지도 않았다. 매정한 말투에 새삼스럽게 상처받을 것도 없다. 바쿠라는 K가 이런 부류의 인간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중대한 오차가 있기는 했지만, 지인으로는 그럭저럭 알고 지낼만 했다.
“나로서는 감사할 따름이지. 블론디 빗치라고 들었는데, 버릴 때 되면 연락해.”
“재활용에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군.”
“군과 나는 쑤시는 구멍이 다르잖아? 엄연히 신품이야.”
바쿠라가 탈색한 것같이 결 안 좋은 금발을 떠올리며 해사하게 웃었다. K는 그런 바쿠라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다시 돌렸다. 서로가 신봉하고 있는 세계관에 관해서 그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일치할 수 없다고 합의를 봤던 까닭이다. 바쿠라는 K가 폭력의 선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을 종종 안타까이 여기곤 했다. 폭력을 위한 폭력은 그저 야만이다. 살을 가르는 명료한 감각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을 알지 못하는 것이 대단히 가엾이 여길 만했다.
“시작했군.”
막이 올랐다. 주변의 웅성거림이 가라앉았다. 온전히 적막하다. 바쿠라는 고요의 사랑스러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앞으로 벌어질 광경에 기대를 털어 부었다.
다소 인간의 카테고리를 벗어난 생물들이 차례차례 무대에 올랐다. 바쿠라는 뺨을 붉히고 눈을 반짝이며 예의 주시했다. 초반의 몇몇은 인간이었으나, 점차 어딘지 한 구석은 인간이 아닌 것들의 나열이었다. 그러나 바쿠라는 이내 낙담하여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았는데, 그것은 기절해 있거나 겁에 질린 얼굴 따위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익숙했던 까닭이다.
“이런 걸 지켜보면 재미있어?”
바쿠라가 깔보듯이 말했다. 특유의 색소 연한 홍채가 바로 앞자리의 반백으로 옮아갔다. 마침 하체에 다리 대신 새의 발 같은 것이 달린 여자를 산 남자였다.
“성인이 될 때까지 인내심조차 기르지 못한 인간의 어디에 살아갈 이유가 있는 거지?”
“이상한 소리를 잘도 하네. 21세기는 자본주의 사회라고? 돈만 있으면 뭐든 괜찮잖아.”
어쩌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최정상에 서 있을지도 모르는 남자가 헛소리를 했다. 자신에게 없는 걸 타인에게 기대하다니 여전히 성격 나쁘다.
“후환이 두렵지 않은가 보군.”
“아이 참, 내가 아니면 이런 말 해 줄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게다가 군은 바른말 취향이잖아? 날 상대로 세우는 건 사양하고 싶지만.”
K는 카탈로그에서 시선을 뗐다. 그리고 이걸 어떻게 조져야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 바쿠라를 보았다. 시선을 알아차린 바쿠라가 약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기울였다. 학창 시절 뭇 여학우들에게 프로포즈를 받아온 미소년의 미소다. “참, 군의 취향은 블론디 빗치였던가.” K는 입을 다물고 있다가, 관심을 줄였다. 해사한 얼굴을 박살내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지만, 번거로움을 무릎 쓰면서까지 할 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번 상품에는 너도 흥미가 있을 것 같은데.”
K가 무대 쪽으로 턱짓을 했다. 무대 위 대형 수조 안쪽에 바쿠라를 닮은 백발의 인어가 관객들을 향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만약 이형의 짐승이 아닌 인간이었다면 쌍둥이를 의심했을 정도로 닮아 있었다. 둥근 눈동자가 크게 뜨였다.
“이거 살래!”
바쿠라가 경쾌하게 외쳤다.
(중략)
앙상한 손가락이 발작적으로 버튼을 눌렀다. 특별한 동기는 없고, 다만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했다. 그럴 때마다 인어는 몸의 근육을 틀면서도, 수조 유리에 몸을 부딪치는 등의 행동을 취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바쿠라에게 멀어지려고 하는 것 같았다. 어깨에 바짝 힘이 들어가고 지느러미를 흔들다가도 잠시 멈칫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저 그 뿐, 전류가 약한 탓인지 행동 불능에 빠지지는 않았다. 바쿠라는 캐비닛에 있을 전기 충격기를 생각하면서 손을 거두었다.
초조한 눈빛이 바쿠라를 예의 주시한다. 하반신이 물고기라고 머리에 든 것까지 물고기 수준인 건 아닌 모양이지. 낯빛 자체는 낯설지 않았지만, 그것을 그려내고 있는 얼굴이 너무나도 새삼스러웠다. 이 얼굴로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바쿠라는 거울로 보는 것과는 다른 얼굴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바쿠라는 수로 안쪽을 향해 머리를 기울였다. 맹렬한 속도로 흰 머리통이 가까워진다. 머리를 뒤로 뺐다. 바로 코앞으로 날카로운 손톱이 스쳐지나갔다. 턱을 스쳤는지 알싸한 통증이 느껴졌다. 맺힌 핏방울이 요동치는 물속에 퍼져나간다. 바쿠라가 환하게 웃었다.
걱정했던 게 무색하리만큼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 어찌됐거나 바쿠라는 동물을 기르는 데는 재주가 없는 것이다. 손에 꼭 쥐면 터지고 뭉개질 것 같이 작은 애완 동물들이야 귀엽기도 하고 해서 자주 길렀지만, 금방 죽어버리곤 했다.
인어는 피를 핥는 시늉을 했다. 붉은 혀가 날카로운 이 사이를 빠져나와 뾰족하게 세워진 손톱을 닦았다. 수중인데 피가 남아있을 리가 없다. 틀림없는 도발이다. 무슨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분노나, 어쩌면 공포를 기대하고 한 것일 수도 있다. 아, 그렇지만 이걸로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하면 정말 오산인데. 바쿠라는 혀를 자르고 절단면을 불에 지지는 생각을 했고, 손톱을 비틀어 잡아 빼는 생각을 했다. 아주 즐거울 것 같았다.
바쿠라는 함께 받았던 안내서와 배터리 사이에서 조작 패널을 꺼냈다. 손목에 채워진 금속 팔찌를 조종하는 것이다. 바쿠라는 양 손목을 뽑아버릴 것처럼 벌리기도 하고, 아래로 끌어내리거나 빙빙 돌리다가 등뒤에 수갑을 채운 것처럼 맞대게 했다. 손을 굽히고 근육에 힘을 주면서 저항하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바쿠라는 이런 굴욕은 난생 처음이라는 얼굴을 마주보면서 입 꼬리를 당겨 올렸다.
물은 차가웠다. 손가락의 관절이 기름칠을 닦아낸 것처럼 뻐근했다. 바쿠라는 소매가 젖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팔꿈치 너머까지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약한 소름이 일었다. 바쿠라는 손으로 인어의 뺨을 감싸 안았다. 물 온도와 별반 다르지 않게 서늘했다. 이 뺨 아래에는 어쩌면 피가 흐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어뜯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쿠라는 거의 수조 안 쪽으로 자빠질 것처럼 몸을 굽혔다. 발꿈치가 발싹 들린다. 머리카락 끝마저 물에 담겼다.
“내가 널 뭐라고 부르면 돼?”
턱에서부터 시작해서 입, 코, 눈과 이마까지 잠겼다. 흰 머리카락이 물위에 떠오른다. 바쿠라는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답 비슷한 것을 시도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저미는 듯 싸늘하다. 불현듯 가슴 어느 한 구석이 섬짓했다. 낯선 것이었다. 때문에 바쿠라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처절한 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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